최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징역 2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으며, 12.3 비상계엄 사태가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명백한 ‘내란’으로 규정했는데요.

도대체 그날 밤, 대한민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갑작스러운 선포부터 국회의 극적인 해제 결의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만들었던 12.3 비상계엄의 긴박했던 타임라인을 팩트에 기반해 완벽하게 정리해 드립니다.
역사의 현장을 복기해 보시죠.
1. 폭풍전야와 충격의 선포 (22:25 ~ 23:00)
모두가 평범한 저녁을 보내던 시각, 대한민국 헌정사를 뒤흔든 뉴스가 속보로 타전되기 시작했습니다.
- 22:25 [긴급 담화] 윤석열 대통령,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대국민 담화 발표. “반국가세력 척결”을 명분으로 비상계엄을 전격 선포합니다.
- 22:30 [계엄사령부 설치]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고, 포고령 1호를 발표합니다. 국회와 정당 활동 금지, 언론 통제 등 헌법적 기능을 마비시키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 22:40 [시민들의 혼란] 주요 포털 사이트가 접속 폭주로 마비되고, 시민들은 SNS를 통해 상황을 공유하며 국회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에디터의 노트: 당시 국무회의 의결 절차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 훗날 재판에서 한덕수 전 총리의 내란 공모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2. 국회 봉쇄 vs 헌법 수호 (23:00 ~ 01:00)
계엄 선포 직후, 가장 긴박했던 곳은 바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이었습니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지 못하도록 물리력을 동원한 봉쇄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 23:00 [계엄군 진입] 무장한 계엄군과 장갑차가 국회의사당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합니다. 경찰과 국회 경비대가 대치하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 23:20 [헬기 강하] 특수부대를 태운 헬기가 국회의사당 본청 옥상 등으로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장면이 생중계되며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 23:30 이재명 대표 (더불어민주당): 국회 출입이 봉쇄되자 담장을 직접 넘어 본청으로 진입하는 과정을 라이브로 중계하며, 의원들에게 “즉각 본회의장으로 집결하라”고 독려했습니다.
- 23:40 [의원들의 집결]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이 담장을 넘거나 봉쇄를 뚫고 본청으로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시민들도 국회 앞으로 모여 “계엄 철폐”를 외치며 인간 띠를 만들어 계엄군의 진입을 지연시켰습니다.
이때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모두 계엄에 반대하며 국회로 향했던 장면은 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적인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3. 운명의 의사봉, 그리고 해제 (01:00 ~ 04:30)
시민들의 육탄 방어와 의원들의 필사적인 진입 끝에, 국회 본회의장에 정족수가 채워졌습니다.
- 01:00 [본회의 개의] 우원식 국회의장이 본회의 개의를 선언합니다. 재석 의원 190명 전원이 참석했습니다.
- 01:02 [해제 요구안 가결]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재석 190명 중 찬성 190명,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습니다. 헌법 제77조에 따라 대통령은 즉시 계엄을 해제해야 하는 효력이 발생했습니다.
- 04:27 [계엄 해제 선언] 국회 의결 후 버티던 윤 대통령은 결국 국무회의를 통해 계엄 해제를 선언합니다. 6시간 만에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태가 종료되었습니다.
[관련 글: 윤석열 내란죄 우두머리(수괴) 성립 여부와 예상 형량 총정리]
4. 그날의 후폭풍, 현재의 상황
12.3 사태는 끝났지만, 그에 따른 법적 심판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 내란죄 수사: 검찰과 특검은 이 사태를 헌법 질서를 파괴하려 한 ‘친위 쿠데타’로 규정했습니다.
- 사법부의 단죄: 당시 국무회의를 주재했던 한덕수 전 총리는 1심에서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습니다.
[관련 글: “위로부터의 내란” 한덕수 중형 선고한 이진관 부장판사 프로필 완벽 정리]
마치며: 깨어있는 시민이 지킨 6시간
12.3 비상계엄 타임라인을 되짚어보면,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결국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과 헌법 기관의 정상적인 작동이었습니다.
만약 그날 밤, 시민들이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서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재명, 한동훈 등 정치 지도자들이 즉각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오늘은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12.3 사태의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무엇인가요?
댓글로 그날의 생생한 기억을 공유해 주세요.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