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를 가볼 기회가 그렇게 많지 읺았는데도 이상하리 만큼 익숙하다. 아마도 어린시절부터 학교에서 사회와 한국사 수업 시간에 반복적으로 들어왔던 지명이기 때문인 듯 싶다. 고인돌이 있고 조일간에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었던 장소이고 호란이 났을 때는 왕이 피신했던 곳이고 많은 외세가 강화라는 관문을 통해 조선과의 수교를 노렸던 그런 곳으로 기억을 한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굴곡이 있었던 장소라 더 한국사에 애환이 서려 있는 곳으로 기억한다. 7080시대에 강하게 일었던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수 많은 노동자가 기계처럼 직물을 만들어 내던 그 시절, 강화도 역시 그 물결에 결을 같이 한 것으로 보인다.
대형 방직 공장이 이 지역의 중심지에 터를 잡고 굳건히 그 위용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런 추측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음속에 고된 노동을 했던 어머니 아버지들을 떠올리며 당시의 대한민국을 경제 대국으로 이끈 원동력이 바로 거기에 있었음을 상기해본다. 그리고 감사를 전한다. 당시에는 일터로써 누군가의 경제기반이 되었던 상신상회 조양방직 공장이 이제는 카페와 갤러리로 변모해 휴식과 만남 그리고 향수의 장이 됐다.
아직 이른 봄, 벛꽃이 채 피기도 전에 이곳을 다녀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한창 움크려있다가 답답함에 못이겨 마스크며 손소독제며 중무장을 하고 나셨던 기억이 난다.
창고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서 녹슬고 낡은 것들을 모아 둔 것이 인상적이다.
이 방직 공장을 개조해서 카페로 만든 조양방직은 말보다는 실제로 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시선이 머무는 자리마다 새로움을 경험한다. 사진 찍을 곳 투성이라 잠시대 쉴틈이 없이 연신 카메라 바튼을 눌렀다. 그럼에도 디테일을 모두 담을 수가 없다. 지면도 모자라 글을 나눠서 써야할 정도다. 이곳에 못 실은 사진은 다음 글에서 이어서 공개하겠다.
지도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상신상회 조양방직 (2) 강화도 레트로 감성카페 미술 갤러리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